BAE Hyunchul

내가 있는 곳, 바다에서

2021.07.30-08.14

[작가노트]

하나.
매일 그림을 그린다. 아침 나절 골목길 담벼락을 그리고, 산책길의 언덕을 스케치한다. 귀갓길 가로등을 그리고, 여행의 기억을 떠올려 색깔을 입힌다.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기억하는 삶의 모습을 내가 평생 만져온 유화 물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조금 투박한가? 그래도 좋다. 최선을 다해 보겠다.

둘.
온 손가락에 물감을 발라 두껍게 칠하며 캔버스에 하루를 기록한다. 가끔은 가볍고 산뜻한 것에 끌릴 때도 있지만,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는 어김없이 묵직한 유화물감에 의존하게 된다. 자유로운 해방감, 가슴을 떨리게 하는 순간의 설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장소의 따뜻함 같은 것들을 표현할 때 나는 유화물감의 웅숭깊음에 감탄한다.

셋.
탁 트인 언덕 위에서 불던 바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해방감을 기억한다. 구름이 쫓겨나듯 몰아치던 바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격정을 기억한다. 햇볕 아래 철썩거리던 파도를 기억한다. 그리고 발 밑의 차가움을 기억한다. 절벽 아래 반짝이는 바다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아득함을 기억한다. 바다와 바람과 파도와 하늘을 모아서 <내가 있는 곳, 바다에서>에서 선보인다.

넷.
길 -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 같이 늙어가는 사람아 /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 물안개에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 끊어질 듯 가늘고 가뿐 숨소리 따라 /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몰랐다 / 저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 들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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